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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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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ENOUGH ODYSSEY

JACKSON SHIM's ARTIST STATEMENT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굿이너프' 시리즈를 작업하게 된 배경에는 이전 시리즈였던 '킹콩'시리즈 결과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였던 것 같다.

나의 작가로서 첫 데뷔는  '킹콩'시리즈였다.

당시, 난 데뷔와 동시에 무척 큰 규모의 미술관에서 킹콩시리즈 20점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때 심정은 마치 꿈과 현실이 황홀하게 뒤섞여 요동치는 기분이였고, 첫 데뷔치고 관람객들의 반응들도 꽤 나쁘지 않았으니

곧 찾아올 깊은 상실감 따위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큰 무대에서 별 탈없이 데뷔전을 무사히 끝냈고

머지않아 나의 작품들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겠거니하는 꽤 풋내기 같은 생각했었다.

 

역시나 그건 '꿈'이였을 뿐이였다. 나는 적지않게 실망했고,

그 대중에 대한 서운함은 가슴속 깊이 꽤 오래도록 자리잡고 있었다.

후에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당신들이 충분히 좋다고 느낄만한 걸 만들겠다.

오로지 내 이야기만으로. 아쉬울 것 없다. 왜냐면 어차피 난 처음부터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다. 나의 데뷔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것일뿐,

내가 미술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였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야만 했다.

문장으로 답을 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난 '내가 보고 자란것들이 나를 만들었다'라는 가벼운 결론을 내고, 즉시 캔버스 화면안에 내가 보고 자란것들을

모두 집어넣는 방식으로 두번째 시리즈를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자란것일까?  처음으로 인생을 복기해보기 시작했다.

굿이너프 시리즈엔 유독 팝송가가들과 만화캐릭터들, 명품브랜드의 로고들로 가득 차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서구문화를 동경해왔다. 한국에서 만든 어린이 영화와는 달리 미국영화에선 E.T가 하늘을 날고 있었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POP송의 사운드 퀄리티는 그야말로 천상의 청량함이 느껴졌다. 또한 한국만화라고 알고 있었던 꼬마자동차 붕붕이나

스머프, 아톰, 마징가Z가 우리나라것이 아님을 훗날 알게되었을 때 꽤나 충격을 받았다.

 

그런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서구문화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락스타들의 노랫말처럼, 그들의

가르침대로 내 인생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그런 나에게 '모험심'을 가르쳐준 하나의 미국영화가 있었다. 바로 영화 '구니스'이다.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을 하는 이유는, '구니스'영화 주제곡 OST의 타이틀 곡이 신디로퍼의 < Goonies "R" Good Enough >이며,

이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화가로서의 인생은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노래 제목을 떠올렸다.

 

그렇게 내 인생영화의 OST에서 따온 이름으로 시리즈 제목을 만들었고,

화면상단에는 'Good enough?' 가 아닌 'NOT'이라는 단어를 넣은 문장을 만들어넣었다.

'어차피 당신들에게 내 작품이 충분하게 좋지는 않잖아?'라는

마치 뒤끝과 서운함이 가시지 않은 감정적인 문장을 넣고 싶었다. 그리고 'GOOD'이란 단어를 한번 더 강조하여

"IS IT NOT GOOD GOOD ENOUGH?" 라는 요상한 문장을 상단에 넣고는 꽤 만족스러워 했다.

나의 속내는 '이제는 당신들이 내 작품을 좋아하거나 말거나 난 신경안써'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굿이너프' 시리즈를 만들면서 의도치 않게 나의 새로운 화풍같은 것이 생겼다.

이 또한 '대중에 대한 서운함'으로 시작되었다.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고는 물감 등으로 감정을 섞어

캔버스를 지워버리면서 시작했다. 아마도 '다신 이 그림들을 못보게 해주겠어' 라는 치밀어오르는 분노같은것도 있었던것 같다.

이 과정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이미지의 파편들이 마치 내 삶의 조각조각이 널려져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화풍이 내것임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지우고, 그리고 덮어버리고를 반복해가며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겹겹이 쌓아올려진 레이어가 내 인생같아 보였다.

그리고 이미 지워져 다른 물감 밑으로 숨어버린 이야기들도 마치 나에겐 액자뒤에 감춰진 또 다른 사진처럼 느껴졌다.

굿 이너프 시리즈의 첫 판매작은, 가장 큰 사이즈였던 100호였다.

그리고 그날, 나는 많이 울었다. 그렇게 또 다시, 어쩌면 '처음'으로 나는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난 그 이후 '굿 이너프 오딧세이'라는 시리즈를 같은 방법으로 한번 더 작업하였다.